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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평원님놀이ㅣ문화로 행복한 동해 동해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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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평원님놀이의 역사

북평원님놀이는 조선조 正祖 20년(1796년,丙辰)부터 북평 장터가 한 달에 여섯 번 개장하면서 주변지역 사람들이 몰려오고 이로 인해 다양한 민속놀이가 전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 어르신들이 고증한 바에 의하면 북평원님놀이는 약 2백 년 전부터 전승된 것이 확인되었고 다른 어느 지역보다 가장 최근까지 연희된 것이 분명하며 동해시 송정 태생의 학자인 만재 홍락섭(1874~1918)의 문집인『만재집(晩齋集)』지권(地卷)에 수록된 ‘시가(市家)’라는 시에도 온갖 물건이 즐비하고 사방의 상인들이 끊임없이 찾아든 북평장터의 모습을 그렸듯이, 사람들이 들끓던 북평장터에서 다양한 놀이가 행해 졌다.

그러나 오늘날 원놀이 또는 원님놀이가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연희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기록이 없으나『청구야담(靑丘野談)』에는 이광정(李光 庭) (1552~1627)의 “거매오처녀(居媒五處女)” 조항에 태수희(太守戱)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태수희가 곧 원님놀이라는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광정은 조선 선조 때 사람이니 선조시대 이전부터 갑오경장을 거치면서 3.1운동 전후까지 원놀이가 연희된 것으로 추정하나 원놀이가 가장 활발하고 오랜 동안 전승된 북평원님놀이는 가장 생명력이 강해서 1919년 3.1운동 이후까지 전승되었다.

북평원님놀이를 현지에서 조사한 바 있는 김일기(金馹起)는 “북평읍 구호리 홍순창(洪淳昌)의 아버지(洪宜鉉)가 원으로 선출되어 성대한 원놀이가 거행된 것이 1902년인데 1922년까지 매년 이어졌다” 고 하던 마을 노인들의 증언을 기술하였다.

현대에 들어 북평원님놀이의 최초 기록으로 1977년 7월 12일 이기원(李基遠) 강원일보 문화부장이 취재한「원놀이의 재연(再演)가능」이란 기사를 보면 원님놀 이에서 급창 역할을 한 정덕교(鄭悳敎) (인터뷰 당시 75세, 대구리)옹과 사령으로 출연했다는 홍종원(洪鍾元) (인터뷰 당시 75세, 송정리) 옹이 모두 청소년기에 출연하였다는 증언이 있으며, 이창식도 이 무렵에 정덕교, 홍종원 옹에게 고증을 받았다.

또 1999년 장정룡이 조사한 김영기(인터뷰 당시 84세) 옹이 어려서 보았다는 고증 등을 미루어 1910년대 후반이나 1920년 무렵까지 이 놀이가 전승되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어 북평원님놀이는 이보다 훨씬 오래 명맥을 이어온 것이다.

일제는 1910년 우리나라를 침탈한 이후 문화말살정책을 펴오다 1919년 3.1운동이후에는 더욱 광분하여 전통 민속행사까지 감시하고 저지하였다.
이런 환경에서 정초의 집단놀이인 줄다리기 횃불싸움 등도 금기시 돼 중단해야 했으며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전통민속 행사인 북평원님놀이가 지속된 것은 이 지역 주민들의 기질과 의식이 워낙 강인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평원님놀이가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난 것은 1978년 제1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 해 4월 10일에 열린 삼척죽서문화제에 시연을 하였고, 동년 10월 19일 춘천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강원도의 대표 작품으로 출연하였다.

일제 강점기와 현대화에 밀려 반세기가 넘게 중단되어 오다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며
특히 과거의 연희자가 아직 생존해 있던 시기에 재연하였다는 점이다.

 
2. 북평원님놀이 구성

북평원님놀이를 연희하는데는 마을단위(1930년대)로 원님의 행차과정을 제외하고, 원님이 선출된 집의 마당과 일종의 송사를 다루는 모의재판 장소가 필요하므로 모의재판 놀이의 무대는 마을 안의 넓은 공터에 마련한다.

원님이 좌정하는 곳에는 ‘아사동헌(衙舍東軒)’이라고 쓴 기를 달아 놓는다.
북평원님놀이의 장소성은 임의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북평원님놀이의 구성원은 100명 내외 정도로 배역은 ‘조선지방 관제복식’으로 가장하였고 참가인원에 따라 적절히 조절하였다.

원의 행차에 참가하는 등장인물의 순서는 보통 전도자(前導者) → 일산(日傘)잡이 → 전배 → 집사 → 도사령(導使令) → 원(守令) → 악대(樂隊) → 후배 → 실내부인 → 아전 → 방자 → 통인(通引) → 기생(妓生) → 사령(使令) → 마을사람 등으로 되어 있다.

마을에 따라 배열의 차이가 있고 가장이나 도구, 인물들의 역할은 적절히 구성하여 연희를 한다.

 
3. 북평원님놀이의 전승

북평원님놀이를 재현한 지 30년이 넘었다.

지난 1910년대에 사라진 놀이가 1978년 죽서문화제에서 각계의 노력으로 되살아난 것으로 지난 1978년 죽서문화제와 강원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해 새롭게 재현한 놀이를 북평원님놀이보존회과 동해문화원, 동해시가 동해무릉제에 출전시켜 대상을 수상한 북평 농악의 대안으로 경쟁력 있는 작품을 추천 강원민속예술축제에 출전시키려고 다시 전승 작업이 이어지게 되었다.

각종 장터공연과 정월대보름공연, 지역축제시연 등으로 맥을 이어오면서 2012년 동해시 민속예술발굴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4차례 열었으며 2012년 10월 12일 학술심포지엄을 관계 전문가로 구성해 심도 있게 추진하였다.

이 심포지엄은 과거 40년 전의 논문을 포함해 논문 3편이 발표되면서 북평원님놀이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이후 동해문화원은 각계전문가의 논문과 마을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종합연희대본을 작성하고 자문교수들의 고증을 받아 전승에 대한 종합적인 정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간의 전승활동 내용
일자 행사명 비고
2011. 5. 28 2011 동해전천제 북평원님놀이 시연 및 길놀이
2011. 10. 7 2011 동해무릉제 북평원님놀이 시연
2011. 10.15 원주 다이나믹 페스티벌 거리퍼레이드 장려상 수상
2012. 6. 1 2012 북평전천제 북평원님놀이 시연 및 길놀이
2012. 4 -11 북평 5일장 활성화 공연 4.28/ 6.3/ 7.8/ 10.28/ 11.18 (5회)
2012. 7 -10 전통문화체험 활동 (망상 한옥) 원님놀이 포토 운영, 각종체험
2012. 10.12 2012 동해무릉제 북평원님놀이 시연
2012. 10.27 2012 새 농민대회 참가 원님놀이 및 농사풀이 준우승
2013. 2.24 계사년 정월대보름 축제 북평원님놀이 시연
2013. 11. 7 2013 강원도권역 어르신문화축제 북평원님놀이 공연
2014. 2 동해시 정월대보름축제 북평원님놀이 시연
2014. 10 제29회 동해무릉제 북평원님놀이 시연
2015. 8 광복70주년 경축 8.15 경축퍼레이드 참가
(원님과 떠나는 광복여행 - 강원도청)
북평원님놀이 시연

2015. 10. 3

제30회 동해무릉제

북평원님놀이 시연

               2016. 4 ~11월             2016 동해시 전통민속문화 육성사업 참여                                         부문별 교육사업

                  2016.  10.   8                제31회 동해무릉제                                                                       북평원님놀이 시연

4. 앞으로의 추진계획

매년 정월대보름 축제에 시연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며 2014년부터 북평원님놀이를 민속축제로 육성하고 앞으로 전국원님선발대회 개최와 원님놀이 송사 대본공모전을 펼친다.

2014년 3월 19일 중소기업청에서 북평민속시장(市場, 북평5일장)을 2014년도 문화관광형시장 육성대상 시장으로 선정되어 2016년까지 14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문화컨텐츠 개발 및 시장 브랜드화가 진행된다.

이 사업과 관련하여 북평원님놀이의 재현과 민속음식(소머리국밥) 등 서로 연계한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북평의 민속적 가치를 증대시킴으로써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함은 물론 북평원님놀이의 역사, 연구실적, 재연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항 및 동해북평원님놀이 대본집(2014)도 발간하였다.